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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서브프라임 뒤에 숨은 위기

2007. 8. 17. 23:51 | Posted by 이누이트
서브프라임 뒤에 숨은 위기

1995년 영국 베어링스은행의 싱가포르 주재 파생상품 트레이더인 닉 리슨이 세계경제를 발칵 뒤집는 사건을 저질렀다.

리슨은 파생상품을 잘 모르는 은행 간부들을 속여 부실을 이익으로 둔갑시키고 거액의 보너스를 챙겼다. 그러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실을 단번에 만회하려고 닛케이지수 선물에 엄청난 판돈을 걸었다. 그러나 고베 지진으로 닛케이지수가 급락하면서 그는 헤어날 수 없는 구렁에 빠졌다. 이때까지 그가 낸 손실은 14억달러. 그 여파로 233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스은행은 단돈 1달러에 ING그룹으로 넘어갔다. 리슨은 6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확산되며 펀드 환매가 급증하자 월가에서도 파생상품 거래로 이름이 높은 베어스턴스는 자사가 운용하던 3개 펀드에 16억달러를 투입하며 위기 수습에 나섰다. 4233억달러에 달하는 자산이 있는 만큼 자기 돈을 들여 투자자 신뢰를 사기로 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도 마찬가지로 계열 헤지펀드에 20억달러를 투입키로 했다. 8382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골드만삭스로서는 충분히 수용할 만한 일이었다.

이런 사례들은 서구 금융기관들이 부실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 것처럼 비쳐진다. 그러나 다른 상황도 있다.

1998년 9월 미국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월가를 뒤흔드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회사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날리던 파생상품 트레이더인 존 메리웨더가 설립한 데다 노벨상 수상자인 MIT의 마이런 숄스와 하버드대의 로버트 머튼 교수 등이 합류해 막강한 진용을 자랑했다. 초기 성과도 양호해 투자자들은 돈을 맡기려고 사정을 할 정도였다.

이 같은 믿음으로 이 회사는 자본금의 20배가 넘는 1000억달러 이상을 차입하며 1조2000억달러가 넘는 파생상품을 거래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일부 디폴트 선언 등 예기치 않은 사태로 잇달아 손실을 입으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환매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나서 14개 은행을 동원해 이 회사 지분 90%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주목할 것은 사건의 장본인인 존 메리웨더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2년 후 TWM파트너스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어 재기에 나섰다.

이번엔 프랑스의 대형 은행인 BNP파리바가 미국 자산유동화증권에 투자했던 계열 3개 펀드의 가치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일시 환매 중단을 선언해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을 초래했다.

그러자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1일부터 나흘 간에 걸쳐 2112억5000만유로(2873억달러)를 쏟아부었다. FRB도 지난 9일 이후 70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하는 등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나섰다.

두 사건의 연관성을 살펴보면서 지난 외환위기 직전 한국에서 유행하던 `대마불사`란 말이 떠올랐다. 당시 큰 기업은 아무리 부실해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정부가 망하지 않도록 살려 줄 것이란 잘못된 믿음이 결과적으로 나라까지 외환위기로 몰아갔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도 서구판 대마불사의 신화가 형성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미국은 롱텀캐피털 사건으로 인한 금융시장을 안정시킨다면서 금리를 올려야 할 시기에 금리를 내려 정보기술(IT) 거품을 초래했다. 이후 거품 붕괴를 수습한다며 다시 한번 고강도의 저금리 정책을 썼다. 그 덕에 외관상 미국 경제는 살아난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쌍둥이 적자가 해결이 쉽지 않은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커진 것도 겉으로 드러난 모기지 시장 부실 이면에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연준리가 금리를 내리는 등 유동성을 풀면 미봉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는 등 내적 부실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모두가 서브프라임 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그 뒤에서 불거지고 있는 새로운 위기를 넘겨다볼 시각이 필요한 때다.



[여론독자부 = 정진건 차장 borane@mk.co.kr]